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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후 태조 왕건(王建)은 개국공신과 지방토호세력들을 통합 관장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 현 개편작업과 동시에 왕씨(王氏)를 사성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이때부터 귀족관료 거의가 성을 쓰게 되었다. 드디어 유학과 귀족중심의 정치가 절정에 달한 문종(서기1046~1083년)에 이르러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선계(先系)를 적어내도록 법제화시켰다. 이는 성종(서기 981~997년) 이후 점차 그 기반을 닦은 지배세력들이 하나의 사회계층으로 정착되면서 그 자신뿐 아니라 자손들까지 중앙정치에 참여시키고 대대로 계승되는 하나의 문벌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고 왕은 그 유교적 정치기반을 이용하여 왕권(王權)을 보다 확고히 다지려 한 것으로, 물론 가문이 좋고 선대(先代)가 고관대작일수록 좋은 관직에 보임되고 승진도 빨랐다.

 

또한 문벌귀족정치가 세습화되면서 많은 관료들이 문벌숭배사상에 젖게 되어 결국 종부시(宗簿寺)란 관제를 두어 각 씨족의 보첩등을 관장토록 하였다. 때문에 문종 이후 사람을 시조(始祖)로 삼은 성씨가 많아졌으며 일반 민중까지도 성(姓)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의 대표적인 귀족가문으로는 최충(崔冲)의 해주최씨, 김은부(金殷夫)의 안산김씨, 이자연(李子淵)의 인천(경원)이씨, 윤관(尹瓘)의 파평윤씨, 김부식(金富軾)의 경주김씨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