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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庚午譜 : 1990년 문헌공 탄신 천주년 기념 대동보 발간사

 

한 씨족의 삶과 번영의 장구한 내역(來歷)을 한 질(帙)의 서책으로 집록(輯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닌데도 그 意義와 목적에 흔연(欣然)히 동참해 주신 전국 첨종제현(僉宗諸賢)의 절대적인 협조아래 문헌공 탄신 一千周年 기념 해주 최씨 대동보를 발간하게 된 것을 무상의 축복으로 생각하면서 전국 20만 종족(宗族)과 더불어 동경동하(同慶同賀)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더욱이 우리 해주 최씨의 구심체이자 전국 조직인 대종회를 재건하고 불과 8년의 광음(光陰)인데 그 간 당면과제였던 문헌영당의 중수 및 정기적인 향사봉행, 문헌공 탄신 일천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의 성공적인 실시와 종지 창간호의 발행 등, 문중 一千年 역사상 가장 찬연하게 기록될 보람있는 사업들을 성취시키고 아울러 문헌서원의 건립과 같은 막중대사를 추진하고 있는 한편에서 대동보의 편찬이라는 어렵고도 방대한 사업에 착수하여 4여년의 각고 끝에 마침내 그 내용에 있었으나 체재에 있었으나 괄목할 훌륭한 보서(譜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우리해주 최씨 문중의 참된 의지의 발로(勃露)요 또한 명문가만이 지닐 수 있는 저력의 소산이라고 자부하고 자찬하는 바입니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계보를 존중하는 관념은 오랜 옛날부터 전래되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입니다.즉 자기 가문의 전통을 고빙(考憑)하여 씨족의 유래를 밝히고 아울러 자기 자신의 존재 배경을 구명(究明)하는 것은 스스로의 체통을 존중하게 하고 조상숭배사상을 발흥케 하는 말하자면 한 씨족의 주체적인 얼을 길러주는 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를 편찬하고 발간하는 것은 결코 봉건적 유제(遺制)도 아니요, 협애(狹隘)한 가족주의나 편파적인 씨족적 이기심에서 배외심(排外心)을 고집코자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전국의 종친이 주지하고 계시는 바와 같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 해주 최씨는 일찍부터 譜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땅에 체계화된 보서(譜書)가 편찬되기 시작한 연대를 전후하여 1744년에 갑자보를 펴낸 것을 효시(嚆矢)로 1961년에 간행된 신축보에 이르기까지 6차에 걸쳐 대동보를 간행하여 오고 있으며 그 간에도 각 系派에서는 대개 一代 30년을 기준으로 派譜를 간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1961년에 간행된 신축대동보는 광고(曠古)의 민족적 수난이었던 6.25 동란의 상흔(傷痕)이 채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찬이 되었기 때문에 사변 중에 북한에서 월남한 종족들이 산지사방으로 이산된 채 연락이 두절되어 있는 관계등으로 누보(漏譜)가 많은 미흡한 족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의 대동보는 이런 저런 면을 철저하게 보정하였으며 또 우리 세대나 후대들에게는 난해할 수밖에 없는 순 漢文의 가장(家藏)등 문헌록(文獻錄)을 國譯하여 누구나 평이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또 근대적인 인쇄 제책(製冊)기술을 최대한 발휘하여 내용에서 장식, 그림에 이르기까지 추호도 손색이 없도록 꾸미는 등으로 기념보 발간의 깊은 意義에 금상첨화가 되게 하였음을 자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대동보의 발간을 계기로 하여 우리 해주최씨 전국 僉宗(첨종)께서는 문헌공  선조로부터 비롯되는 一千餘年의 존귀한 역사를 재인식하고 선조들의 빛나는 世德과 공적을 顯影(현영)하는 사업에 적극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또 동성동본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라는 인성의 벼리를 존중하고 친족간의 화목을 더욱 돈독히 하여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결국 훌륭한 조상님들의 위업을 기리고 받듬으로서 온고이지신(溫古而之新)하고 한 씨족이 뭉쳐져 나름대로 애틋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은 한 나라의 발전과 한 민족의 융화단결에도 크게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 때문에 북한 땅에 잔류하고 있는 족친들을 이번 대동보에 함께 수단(收單)하지 못함을 못내 애석하게 생각하며 하루속히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기념보가 발간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발간사에 가름하는 바입니다.

 

이번의 대동보 발간에 제(際)하여 보서편찬위원장의 막중한 소임을 맡고 선두에서 각고면려(刻苦勉勵)하신 吉埈 종친과 편찬위원,지도위원,그리고 실무진 등, 여러 부분에서 애를 쓰신 종친 여러분과 특히 재정적으로 협찬을 해주신 종친여러분에게 충심(衷心)에서 감사와 치하를 드립니다.

 

1990년(庚午)10월

海 州 崔 氏 大 宗 會

회장 元植(32세손) 謹識

 

◇ 1990년 문헌공 탄신 천주년 기념 수보사

 

해주최씨는 신라 말 고려 초에 해주 수양산아래 대녕군에서 諱 온(溫)으로부터 기원하여 그 아드님인 문헌공 諱 충( )이 찬연한 광채를 발함으로서 1000여년 명문 의로서의 생영(生榮)의 장을 펼쳐 왔으며 특히 고려조에서는 대를 이어 많은 재상, 명현, 석학을 배출하여 고려전조를 통한 최대 귀족가문의 하나였으며 조선 朝에서도 각 방면에 걸쳐 많은 공헌을 하여 온 명문(名門)인 것입니다.

 

문헌공 휘 충께서는 고려 목종 8년(서기1005년) 약관 20세에 문과의 갑과에 장원급제하신 후 현종, 덕종, 정종, 문종 등 4대에 걸쳐 50년간을 출장입상 국가요직을 두루 거쳐 수상인 문하시중에 9년간 재직하시며 고려조정의 기틀을 확립하고 문화를 크게 빛내어 무려 11개의 공신칭호를 받으신 사직지신입니다. 뿐만 아니라 관직에서 물러나신 후, 70 고령의 몸으로 수기치인의 유학사상으로 구재학당이라는 사학을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성력을 다하시는 등, 문헌공의 일생은 실로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상 다시 없는 훌륭한 후세인들의 사표가 되셨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사학개설과 후학양성뿐 아니라 북송(北宋)의 정자, 주자보다 40여년이나 앞서 성리학의 진토를 구재학당의 건학이념으로 또는 교육방법으로 구현시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진유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유종으로서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추앙을 받으신 분입니다. 이렇듯 훌륭한 선조를 모시고 있는 우리문중은 문헌공 탄신 천주년이 되는 1984년에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계의 권위자인 석학들을 망라하여 문헌공의 인간상, 학문, 국가와 민족에 끼친 덕업(德業) 등을 연구하게 하고 이를 집대성한 최충연구논총을 발간(경희대학교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간행)하였으며 동 연구소의 주관으로 최충연구학술심포지엄도 전국 규모로 성대하게 개최하여 문헌공의 위업을 역사적으로 조명, 재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사는 단순한 숭조(崇祖)정신의 발로라기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학문과 경륜을 현영하므로서 국민정신교육에 기여하는데 큰 뜻이 있었다고 자긍하는 바입니다. 그 밖에도 대종회에서는 전통적인 숭조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영당향사를 전국의 종친이 참집하여 년례(年禮)행사로 봉행하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가문의 긍지를 심어주기 위한 종지도 발간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종친들의 연결고리를 보다 굳건히 구축하고 경조애친의 전통사상을 간직하기 위하여는 대동보의 편찬발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대종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우리 보서상으로 문헌공 탄신 일천주년이 되는 1986년을 기해서 기념대동보서 편찬에 착수키로 결의하고 4년간의 편수 끝에 해주 최씨 일천 년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문헌공탄신 천주년 기념 대동보서를 발간하게 된 것입니다.

 

대동보는 문헌공 사후 676년이나 지난 1744년에 갑자보(甲子譜)가 처음 발행된 이후 1807년의 정묘보(丁卯譜), 1866년의 병인보(丙寅譜), 1891년의 신묘보(辛卯譜), 1919년의 기미보(己未譜), 1961년의 신축보(辛丑譜)에 이어 이번이 7번째가 되는 것입니다. 1961년의 신축보는 6.25전란으로 월남한 종친들이 전국 각 지에 이산되어 있는데다 4.19의거, 5.16혁명 등의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편찬작업을 했기 때문에 수단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미흡한 보서가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러한 결점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문헌공탄신 천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가문 일천년의 흐름을 재 조감한 대동보(大同譜)이므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원래 보서란 우리들 자신의 현존이 있기까지의 혈통의 흐름을 기록하여 그 뿌리를 알고 아울러 조상들의 역사에 끼친 공적을 반추하므로서 후손으로서의 자존과 긍지를 지니게 하며 또 혈족을 하나로 결집시켜 서로 화목을 도모하게 하는 우리고유의 전통문화인 경조애친사상을 고양하는데 필수적인 보감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비판적인 외래문화의 수용 등으로 일부 몰지각한 젊은이들 가운데는 우리민족 전래의 가치체계를 무시하고 보서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또는 이를 부정까지 하는 경향이 있으나 보서의 귀중함을 잘 알고 있는 우리 해주최씨 전국 종친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기념보서 편찬사업에 동참함으로서 명문으로서의 전통을 과시하였으며 특히 소명의식과 책임감에 투철한 편찬위원일동이 수단으로부터 편찬업무 추진에 성과 열을 다하였음은 문중이 동경동하(同慶同賀)하여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편찬위원회에서는 이번 기념보서(紀念譜書)가 지니는 역사적인 의의를 감안하여 보다 알차고 보다 훌륭한 보서를 만들기 위해 문중의 다수 의견을 존중하고 중지를 결집하도록 노력하였으며 전래되어온 가장, 문집, 문헌 등을 가능한 한 많이 수록하고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전문을 완역하고 체재나 표장이나 그림에 있었어도 손색없는 보서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이렇듯 열과 성을 다 바쳐서 편찬한 보서이지만 반세기에 가까운 남북의 분단 때문에 재북(在北)종친들이 이에 참여할 수 없었음은 참으로 천추의 한사이며 한시라도 빨리 국토가 통일되어 남북통일기념보서를 발간하고 해주최씨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해주 문헌서원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보존사업이 이루어지고 개성 송악산록에 있는 구재유허지(九齋遺墟地)에 대한 발굴과 고증 등 문중의 숙원사업이 성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이번 기념보서편찬에 있어 모든 종친의 한결같은 정념의 발로로 의외로 많은 협찬이 답지하여 현안의 문헌서원 건립사업도 지원할 수 있게 되고 문중 장학사업등 후속 사업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음은 오랜 전통을 가진 문중의 크나큰 경사가 아닐 수 없으며 이를 계기로 앞으로 여러 가지 문중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다시 한 번 역사에 크게 남을 문운(門運)의 중흥이 있기를 전 종친과 함께 기원하는 바입니다. 미구에 나마 수단 업무 지도에 많은 노고를 하여 주신 지도위원과 협찬에 참여하신 종친들의 방명을 기록하여 그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1990년(庚午年) 新春

문헌공탄신 천주년기념 해주최씨 대동보 편찬위원회

 

위원장 : 길준(吉俊 : 32世)

부위원장 : 익렬(翼列 : 29世). 수동(洙東 : 30世). 병륜(秉倫 : 30世). 용구(龍九 : 31世)

위원 : 영주(煐周 : 사정공파). 우(愚 : 교리공파). 명호(明鎬 : 문정공파). 승수(承綏 : 대녕군파). 석천(錫天 : 서운부정공파). 인선(寅善 : 전서공파). 재신(在新 : 현감공파). 강현(康賢 : 현감공파). 원식(元植 : 좌랑공파). 태봉(泰峯 : 좌랑공파). 진호(鎭澔 : 좌랑공파). 태진(泰鎭 : 생원공파). 갑석(甲錫 : 생원공파). 학구(鶴九 : 진사공파). 병하(秉夏 : 전한공파). 길호(吉鎬 : 전한공파). 성부(聖傅 : 판사복시공파). 영봉(泳峰 : 승지공파). 익선(益善 : 좌윤공파). 기춘(基春 : 감찰공파). 규형(奎炯 : 사평공파). 승환(昇煥 : 해릉군파)

실무임원 : 간사장 승군(承君 : 31世). 사무국장 병필(炳弼 : 31世). 편찬간사 형식(瀅植 : 31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