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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 건치 연혁
문중의 역사 > 유래 > 해주 건치 연혁

여지승람 해주목(海州牧)편에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해주는 삼조선(三朝鮮 :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땅으로 원래 고구려 내미홀군(內未忽郡)인데 신라 경덕왕때 폭지라 하였고 고려 태조에 이르러 고을 남쪽으로 큰 바다가 있다 하여 지금의 해주(海州)로 고쳐 불렀다. 성종 때에 목(牧)을 설치하였고 현종 때는 안서도호부라 하다가 예종 때는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고종 때 다시 목(牧)으로 고쳤다가 공민왕 때 주(州)를 군(郡)으로 강등시켰으며 다시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17년에 평산부(平山府) 서쪽을 나누어 예속시켰고 세조 때는 진(鎭)을 설치하였다. 관원은 목사(牧使), 판관(判官), 교수(敎授) 각 1인. 군명(郡名)은 내미홀(內未忽), 지성(池城), 장지(長池), 폭지(瀑池), 대녕(大寧), 서해(西海), 안서(安西), 수양(首陽), 고죽(孤竹).

 

해주 수양산(首陽山)에는 해주 8경의 하나인 수양폭포와 황해도 3대 산성 중의 하나인 수양산성이 있다. 수양폭포는 옛날에는 지성폭포 또는 대녕폭포라 불렸으며 그 길이는 128m에 달하고, 물이 맑고 주위 경관이 수려하여 물보라가 한창일 때는 바람에 나부끼는 여인머리 결을 연상케 한다. 또 수양산성(首陽山城)의 둘레는 약 8km, 성벽의 높이는 원래 6m였는데 지금은 세월에 깎여 많이 낮아졌다. 옛 고구려 때에 축성한 것으로 성벽에 붙은 적병을 물리치기 위해 성벽 중간 중간마다 치(벽이 각으로 튀어나오게 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수나라 배구전]에 고려는 원래 고죽국(孤竹國)이다 하였고 대명일통지(大明一通誌)에도 영평부 서쪽 15리에 고죽국 임금을 봉한 땅이 있다고 했으며 해주성(海州城) 서북쪽에 고죽국 세 임금의 무덤이 있고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사당이 있으니 이곳이 고죽국인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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