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世祖 : 문화공화상찬(文和公畫像讚)
찬란한 봉(鳳)이 세상에 나온 듯 오색구름이 빛을 나타낸 듯 평화로우며 순수한 인격이었고 높고 맑으신 풍채였다. 재분은 선천적으로 높았고 공적은 깊은 학문에서 기인하였다. 안에서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나아가서는 충절이 철저하였다. 불교의 학설을 배척함에 거센 물결을 막아내는 바위와 같았고 나라의 정치를 보좌함에는 보와 기둥처럼 든든하였다. 긴긴 밤이 밝아오는데 샛별과 달빛이 함께 비치는 듯하였다. 선한 공덕을 쌓은 증거는 대대로 청백함을 계승하였다. 맑으신 풍모는 아직도 엄숙하여 우러러 볼적마다 교훈을 준다.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이 지음-
3世祖 : 문화공중수화상찬(文和公重修畫像讚)
아! 아! 선생께서는 덕에 의거한 일만을 행하셨다. 문헌공의 맏아들로 그 훌륭한 업적은 대를 이었다. 충직한 말씀을 극진히 올리어 신하로서의 직분을 공경히 닦았다. 옥처럼 맑으셨고 산처럼 우뚝하셨다. 우리는 공을 표준으로 본받았다. 화상을 그런지는 오래되었으나 풍모는 아직도 새로워 보인다. 누가 다시 모사하였는가? 훌륭한 후손에서 이루어졌구나.
영락(永樂) 3년 朝鮮 태종 5년(1405) 을유 춘정월
-10대손 예문관직제학 지형조사(藝文館直提學 知刑曹事) 관(關)이 다시 모사함-
3世祖 : 문화공제문(文和公祭文)
공은 부친의 업적을 잘 계승하였고 미덥게 충직함으로 임금을 섬겼다. 성인(聖人)의 학문을 존숭하였고 불교를 배격하였다. 양조의 사실을 보고 징계하라고 간하신 말씀, 봉(鳳)이 아침에 우는 듯 강직한 태도였다. 내려 닥치는 홍수를 막아내는 큰 방죽과도 같았다. 선대의 전통을 잘 지켜야 된다고 임금에게 충고하여 나라에 더욱 빛을 발했다. 부친의 사당에서 함께 제물을 받드는 것은 우리 도(道)의 빛남이옵니다.
가정(嘉靖) 29년 朝鮮 명종 5년(1550) 庚戌 5월에
-황해도관찰사 주세붕(周世鵬), 도사 조응공(趙應恭), 해주목사 정희홍(鄭希弘)이 함께 쓰고 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