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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 수보사(修譜史, 족보발간역사) > 정묘보(丁卯譜, 1807년)

◇ 丁卯譜 序

 

우리 최씨 집안의 족보는 숭정 병자년(1636)에 처음 만들어졌다. 묵수당 휘 유해(有海)께서 간행하셨으나 그 판(板)은 본 주(해주)에 있다. 그로부터 109년이 지난 갑자년(1744)에 청하현감 휘 홍상(弘相)께서 옛 족보에 보태고 다듬어 그 보판(譜板)을 홍천(洪川)으로 옮겨다 놓았으니 지금까지도 세상에 전한다.

 

아아, 이 족보가 60여 년 동안 서로 잇달아 나오고 거듭 다듬어져 후대의 운손(雲孫)과 잉손(仍孫)들까지도 모두 한 근원의 친척들임을 알게 하였다. 이는 참으로 우리 宗人들에게 커다란 다행이니 역시 우리 조상들께서 쌓으신 덕(德)과 행하신 효(孝)의 끼치신 덕택이 아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 성상(聖上)께서 지금 친척들끼리 돈독하게 지내는 가풍을 일으키시고 나라가 태평해진지도 또한 오래되었다. 그래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족보를 다시 손질하는 일이 많아졌다. 해주최씨도 손꼽히는 집안인데다 계파(系派)도 번창해지고 안팎으로 흩어져서 족보의 내용을 더 보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경자년(1780)에 과연 족보를 다시 만들자는 논의가 일어났다가 얼마 안되어 그만 두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지만 선군(先君)께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그 뒤에도 해주최씨의 여러 宗人들이 또한 이런 의논을 여러 차례 내었지만 곧 그만 두었고 이러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소자(小子)는 족보를 다시 만드는 일에 있어서 다른 宗人들과는 달리 민망히 여기는 점이 있다. 세대가 점점 멀어질수록 족보 만드는 일이 더욱 늦추어지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종형인 동보(東甫)와 서로 의논하였다.

 

「족보를 다시 정리하자는 의논이 예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종형도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소. 지금에 이르러 계속 족보를 만드는 책임은 사실대로 다듬고 정리하는 데에 있소. 그대가 있는 힘을 다해 이 족보사업을 이루도록 해보시오」 그러면서 이 일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그래서 나는 감히 종형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냐며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다하여 족보 만드는 일에 근엄하게 힘썼다. 일을 시작한지 2년 만에 드디어 끝내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죄를 주는 것도 춘추(春秋) 때문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春秋) 때문이다」라고 말할 만 하게 되었다.

 

아아, 인심이 옛스럽지 않아서 이따금 무단히 핑계를 만들어서 회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가(譜家)에 있어서는 계통(系統)의 의를 중하게 여긴다. 후손이 있는 사람은 후손이 없는 것처럼 해 두어서는 안되니 마치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것처럼 하는 것 같다. 족보를 만들 때에 반드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단자(單子)를 보내지 않았더라도 아무개(公)의아들인 것을 알면 그 손자는 그 아래에다 넣어서 기록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족보를 만드는 법이다. 그러나 그 계파와 명(名), 자(字)를 알지 못하면 억지로 쓸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족보에서 빠뜨리게 된다. 나는 이러한 의리가 온당한지 아직은 모르겠다.

 

이번 일이 불행히도 나에게 맡겨졌지만 나는 계속하여 족보를 만들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운손(雲孫)과 잉손(仍孫)들이 번성해지고 벼슬들도 높아져 예전에 비해 많이 늘리게 되었다. 이는 참으로 조상들께서 선행(善行)을 쌓으시고 충성과 효성으로 갚으심에 근원한 것이다. 아아, 지극하여라. 지금부터 계속하여 천만 년이나 오래되면 몇 사람이나 과연 조상의 뜻을 이을 수 있을런지 알지 못하겠다. 이번에 족보를 만들면서 조상들의 뜻을 떨어뜨리지나 않았는지.

 

우리 집안의 군자들에게 무궁함을 아뢴다.

 

순조 7년(단기 4140년 / 서기 1807년) 정묘 초겨울에

- 문헌공 25세손 승헌(承憲)은 삼가 서문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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