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최온(崔溫)은 널리 알려진 해동공자(海東孔子)문헌공 최충의 아버지로 해주 대령군 수양산밑에서 오래동안 살았다. 그곳의 별칭이 고죽군이어서 고죽최씨라고도 한다. 시조 최온은 일찌기 해주지역 토호족으로 재산이 넉넉하였고 주위에 선정을 베풀어 장자 호장으로 명성이 높았고, 뒤에 태자태보(太子太保)를 증직 받았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해주에서 이루어졌고 또 여러 대에 걸쳐 해주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여 대를 계승하고 있다.
문헌서원(文憲書院) 소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라의 학문을 크게 일으킨 대학자나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하고 절개를 지키다 돌아가신 어른의 영정(影幀, 초상화)이나 위패(位牌, 돌아가신 조상님의 이름을 적은 나무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한편 선비들이나 학생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講論)하는 일종의 교육기관이 세워졌다.
그리하여 동방의 대학자이신 해동공자「문헌공」최충 선조님을 모신 서원도 나라 안에 여러 군데 세워졌는데, 그 대표적인 서원이 북한 땅인 해주에 있는 문헌서원이다. 그러므로 북쪽으로 갈 수 없는 남한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문헌서원을 오산에 다시 세웠다. 元植 前대종회장(32세손 좌랑공파)이 서원건립추진위원장을 겸임하고, 승군 간사장(사무총장)의 노력을 더하여 1990년11월30일 영정각부터 착공하여 3년여에 걸친 서원의 대역사(役事)를 1992년8월30일에 마무리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