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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 수보사(修譜史, 족보발간역사) > 기미보(己未譜, 1919년)

◇ 己未譜 序

 

내가 [고려사]를 읽어보니 최문헌공(崔文憲公)께서 후진(後進)을 인도하신 공(功)은 지극한 것이었다. 그 뒤로 대대로 명망과 덕(德)이 있는 분이 태어나 해주 최씨는 울창하게 나라 안에 명망이 있었다. 그러한 까닭은 연원(淵原)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연원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모두 선조(先祖)의 아름다운 점에 젖어들었고, 하늘로부터 받은 청명하고 돈후(敦厚)한 기운이 참으로 같은 류(類)로 전승, 부연되었기 때문이다.

 

해주최씨가 족보를 가진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기미년(1919년) 가을에 최윤현(崔潤鉉)군과 최승룡(崔承龍)군이 같은 성(姓)의 사람을 크게 족보로 만들고 족인(族人)인 상선(庠善) ,승조(承祖)로 하여금 나에게 찾아와서 서문(序文)을 구하게 하였다. 나는 일찍이 문헌공(文憲公)을 사모하였고 최씨 집안에 어진 사람이 많은 것을 탄복하였던 지라 서문 쓰기를 허락하고 찾아온 사람들과 더불어 선세(先世)의 사적을 이야기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았다. 또 들으니 해주는 산천(山川)이 고운데 특히 문헌서원(文憲書院)은 수석(水石)이 기미하고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였다. 바위는 모두 옥돌과 같이 흰빛으로 가을만 되면 기운이 맑아 골짜기가 모두 빛을 낸다고 하였다.

 

최씨 집안으로 그 고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수 천명이나 되는데 그곳에 거주한지가 오래되어 가장 최근에 거주한 집도 8, 9세(世)를 지났다고 하였다. 혹은 해주에 이웃한 읍(邑)에 거주하기도 하고 혹은 거주가 해주(海州)로부터 먼 곳에 떨어져 작은 항구나 굽이진 만(灣), 큰 산이나 긴 계곡사이에 집안끼리 모여 거주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혹은 백년동안 살았고, 혹은 수백 년 동안 살았다 하니 아! 어찌 그리도 융성한가?

 

세상에서 현자(賢者)라고 칭하는 사람은 대체로 명예와 덕이 빛나게 드러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마련이요, 내가 앞서 최씨를 칭송한 것도 최씨의 빛나고 드러난 사람들을 두고 말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최씨가 조상의 마을에서 오래도록 거주하여 종족(宗族)의 성대함이 이와 같다는 사실을 듣고서 그들이 궁벽진 지방에 깊이 숨어서 효제(孝悌)의 행실을 실천함으로서 조상을 이어 그 족성(族姓)을 유지함에 대하여 탄복하게 되었다. 그들의 현명함을 어찌 쉽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이는 모두 청명(淸明)하고 돈후(敦厚)한 기운에 의하여 전승, 부연된 것이다. 대저 선조(先祖)가 후손에게 만연되어 현자가 많은 것이요, 현자(賢者)가 많이 만연됨이 또 더욱 성대하고 넓게 퍼진다면 최씨의 융성함은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처음의 족보와 속편에는 모두 서문이 있고 범례와 보(譜)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다시 드러내지 아니한다. 다만 문헌공(文憲公)이후 자손들에게 현자(賢者)가 많다는 사실과 앞으로의 후손에게 기대한다는 말로서 최씨의 종족(宗族)으로 하여금 더욱 노력하라는 말을 적어둔다.

 

단기 4252년(서기 1919년) 기미 그믐달

-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 동래(東萊) 정은조(鄭誾朝) 삼가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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