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첫 번째, 안동의 어느 집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는《훈민정음》이라는 책은 나라잃은시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小倉進平의 조작임을 확실한 증거를 들어 명명백백하게 밝혀 놓았다.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을 간행했다라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 첫째이고, 당시에 집현전 대제학을 빈자리로 비워 두었는데 정인지의 벼슬이 대제학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둘째이며, 서법이 우리와 다르게 표기된 곳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 셋째이며, 그리고 원본과 다른 엉터리 글자가 여러 곳에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들어 안동 어느 고가에서 나왔다고 하는《훈민정음》은 위서(僞書)라고 이 책은 밝혀 놓았다.
이 책은 소창진평이 장사꾼의 속셈을 가지고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을 베끼고 1940년대 규장각에서 발견된 지은이를 모르는 책 ‘훈민정음해례’와 《세종실록》에 있는 정인지 서문을 편집하여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질 검사를 해보면 바로 밝혀질 것이라고 려증동은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세종실록》에서 가져 왔기에 위서가 아니다. 단지 소창진평이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엉터리로 엮었기에 지금이라도 《세종실록》에 있는 《훈민정음》을 제대로 역어 책으로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10월 9일 <한글날>은 잘못되었다
두 번째, 이른 바 한글날이라는 것도 바로 잡혀지길 바란다.
배달글자가 발표된 것은 세종 25년 계해년 12월이었다. 이러한 것인데도 나라잃은시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자 小倉進平이라는 무식쟁이가 「세종 28년에 언문을 반포(斑布)했다」라고 했다. 무식한 거짓말이었다. - (중략) - 책을 널리 돌리는 것을 「반포」라고 말하는 것이다. 배달글자인 「ㄱㄴㄷㄹㅁㅂ……ㅎ」28개 글자는 책이 아니기에 「반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일본사람 進平을 무식쟁이이라고 말했던 바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책을 돌리는 것을 「반포」라고 한다. 사실을 알리는 것을 「敎書」라고 한다.(58쪽)
글자를 만든 것은 「制」자를 쓰고, 책을 만든 것은 「成」자를 쓰게 된다. 그리하여 세종 25년 12월에 「上親制 諺文二十八字」라고 실록에 적혔고, 세종 28년 9월에 「訓民正音成」이라고 실록에 적혔다. 「訓民正音書成」이라는 내용을 「訓民正音成」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 (중략) - 「訓民正音書成」을 두고 무식쟁이 進平이 「訓民正音이 완성되었다」라고 번역했던 것이다. 「訓民正音 이라는 이름으로 된 책이 이룩되었다」라는 말인 것을 발바닥 눈 무식쟁이 進平이 일본말 「完成」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광복 후 「세종실록 번역서」에서도 무식쟁이 進平의 번역대로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라고 되어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114쪽)
곧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날은 훈민정음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만들어진 날이라는 것이다. ‘성(成)’자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였기에 부끄럽게도 우리는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모르게 되었다. 이제 바로 알게 되었으니 한글날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훈민정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소창진평이라는 일본 학자의 무지에서 비롯하여 광복 후 우리 학자들이 아무 생각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온 데 기인한다.
이제라도 이것을 바로 잡고자 <배달글자>라는 책이 나왔으니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하루 빨리 바로 잡아 올바른 것을 기리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것이 사필귀정인데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바른 것을 보고도 지난날 자기의 잘못이 부끄러워 올바른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외면하는 못된 버릇이 남아 있다. 안타까울 뿐이다.
-""배달글자"" 중에서...-
*김윤경 등 해방후 우리 학자들은 경성제대교수였던 고꾸라 신뻬이(小倉進平)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의 책에서 최만리선생에 대한 내용을 확대해석하여 쓴 책에서 지금까지 교과서등에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학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석이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학자들의 자신의 입장을 물러서지 않는 고지식적인 성향에서라 생각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하였다고 인정하는 것"" 이 바로 우리나라의 학자나, 정치인들의 국민을 생각하는 공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