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회 열린우리당 원내 고위 정책조정회의 및 대전지역 민주인사들과의 만남에서 국회의원 김원웅(열린우리당 - 대전)은 전시작전통제권, 한미FTA, 헌제소장임명 등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종대왕때 최만리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문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을 섬기는데 부끄러운 일 이라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었다>> 고 언급하며
<<현재한나라당 태도를 보면 ´최만리´를 연상시킨다.. (중략) 동맹과 예속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은 역사에서 21세기 최만리로 기록될 것>>
이라는 기사가 ´한나라당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가 되겠느냐? 는 제목으로 인터넷 및 지역신문에 게재되었씁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점에 대해서 대단히 불쾌한 심정을 감당할수가 없습니다. 김원웅의원은 현재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그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는데 그런분이 공공의 장소에서 확실치 않은 지식으로 한 성본종중의 추앙받는 선조님의 휘자를 들먹이며 지금의 난잡한 정치판의 상황에 빗대어 끼워넣은 그 논리는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원웅 의원은 그 발언의 진실된 해명과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 민족에 만고의 역적이 아니고서야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발언이 그 후손들의 마음과 마음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계신 선조님을 이렇듯 폄하하고 욕보일수가 있습니까?? 김원웅 의원이 진정 깨어있는 정치인이라면 본인의 잘못을 가슴깊이 반성하고 사과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대종회에서는 금번 상황에 대해 2차로 서면을 보내 정식 항의 정식으로 답이 없는바 전국의 종친들께서도 김원웅 의원의 홈피(http://www.kww.or.kr)에 댓글 남겨주십시오.
김원웅 의원 인물사전 수정본 인기리에 再發刊 (공화당에서의 행적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연대가 맞아떨어지는군요.
아래 본문은 김원웅 을 타도 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글입니다.
독자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난번에 발표한것에 보강하여 올려 놓은것이오니 많은 참고 바랍니다. 하옵고 公의 경력을 볼때에 유신 정권 시절에 정치에 몸담았다 했는데, 당시에 지금 열우당 1세대들은 전부 운동권 학생이었는데,반대로 이사람은 유신정권의 당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음.
***인물 사전***
김원웅: (1944年 中國産~ ? ) 자는(人面獸心) 호는(馬耳東風)
公은 1944年 中國 中京에서 獨立鬪士의 아들로 出生하여 1962年대전고등하교를 거쳐,1972年 공화당에 입당하며 정치를 수학함과 동시에 1974년 서울 대학교 정치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주욱 공화당에서 활동을 하였던것 같다.
1972 - 공화당 사무처 근무 1974 - 새세대문제연구회 조직부 차장 1975 - 공화당 해외국 간사 1980 - 공화당 청년국 국장 1980 - 1986 상덕장학회 이사장 1982 - 민정당 정책국 부국장 1986 - 민정당 헌법특별위원회 행정국장·청년국장 1988 - 민정당 국책연구소 상근연구위원 1988 - 민정당 대전동을지구당 위원장
1992~1996年 독립 기념관 이사로 재직을 하였고, 1993年민주당 대전시 지부장을 역임 하다가,1992~1996年에 드디어 민주당 제14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 하였고, 1996~2000年에는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당시,낙선한 몇사람과 함께 하로동선 이란 음식점(저들은 식당이라 표기하였음:식당이라는 표기는 일제의 잔재이기에 옮긴이는 음식점으로 표기하였음)을 운영하다가, 2000~2004년 한나라당 제16대국회의원으로 국회에 다시 진출하여 2002年유시민(당시 시민 운동가)과 개~혁국민 정당 이란 당을 만들고 스스로 총재가 되었으며(이때에 뭔개혁을 어떻게 했는지 알수가 없음)
제14대 국회에서는 국회윤리특위 위원장을 역임 하였고,2004~? 열린 우리당소속제17대 국회의원으로 국회 통일 외교 통상 위원장으로 있을때 북한이 핵실험 한다고 하니까 북한이 핵실험 할수 있는것은 매우 희박하다고 망언을 하면서 정신 낫자루 빠지게 뛰어다니면서 의정 활동을 하였다한다.
2006年 9月13日저녁에 대전 모 음식점에서,지역 친여 원로(대한민국 민주화 운동 1세대?)들과 정국현안에 대하여 논의 하던중 전시작통권문제로 한나라당 초선의원 10 여명이 전작권 환수문제로 철야 농성을 한다는것에 公의 의사와 역행 한다하여, 가만히 있는 해주최씨 先祖인 副提學公(朝鮮祖 靑白吏 1號) 을 비방 폄하하며, 독설을 퍼부었다가,결국에는 해주최씨 일족에 의하여 정치생명에 終(마칠종) 을 두드리게 되었다.
당시에 해주최씨 일문의 항의는 연일 빗발(태풍)치듯 하였으나, 나몰라라 하고 궁색한 변명만을 늘어 놓다가 결국에는 권좌에서 떨어지게 되었다.(업저버가 아닌 정확한 소식통의 이야기임) 이사람은 평소에도 말이않되는 말을 곧잘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그리고 무슨일을 잘했는지는 전해지지않고 있기 때문에 알수가 없다.
위에 내용은 단순하게 우리 해주최씨의부제학공에 대한 김원웅(열우당 국회의원:대전,대덕) 이의 망언에 대응하여 이를 타도 하기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것 이기 때문에 정치목적으로는 절대로 사용할수 없음을 고지합니다 .
****속히 나와서 우리해주최씨 전국 30만 종친에게 공개사과를 하라!!!**** 이인물사전에 대한 저작권은 해주최씨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