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문 ----- 어제 저녁 말씀하셨던 내용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는데 충의공께옵서 영의정에 증직되셨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사실만 나올뿐이고 계속하여 일성록이나 승정원 일기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1. 1593년 6월 1일 졸기에 좌찬성에 추증되심 2. 1646년 (인조24) 시호를 내리다. 시호? 3. 1750년 (영조26) 삼충(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중 충의공(최경회)이 수립한 공이 더욱 두르러졌다 4. 1753년(영조29) 좌찬성 최경회에게 충의라는 시호를 내림 5. 1833년(순조33) 부조묘를 내림 이상의 기록만이 현재까지 확인한 내용입니다. 혜량하시옵소서 ------------------ 강림 국장님! 애를 쓰십니다. 忠毅公 (諱) 慶會장군님의 기록은 제가 왕조실록은 물론 승정원 일기및 일성록 기록 까지 전부 확보해놓있으나,위와같은 내용만이 있을뿐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내용인지 알수는 없지만 영의정으로 증직되신 기록을 찾기가 쉽지를 않기에 드린말씀입니다. 그럼 만약에 그기록이 없다면 영의정으로 증직되셨다는 내용의 이야기에 출처에대하여 연구를 해야할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애써주시고,자료를 공유하시려는 국장님의 마음을 우리 청년회에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찬성 [贊成] 요약 조선시대 의정부에 속해 있던 종1품 벼슬. 본문 1426년(세종 8) 의정부를 개편하면서 처음으로 좌찬성·우찬성 각 1명을 두었다. 태종 초 의정부찬성사의 약칭이자 조선시대 의정부 차관인 좌·우찬성의 통칭이기도 하다. 이상(貳相) 또는 이재(二宰)라고도 하였다. 참찬과 함께 의정을 보필하면서 의정부사와 대소 국정 논의에 참여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의정, 참찬 등이 총리대신으로 개칭되고 또 기타 관직명이 폐지되었을 때도 찬성은 계속 유지해왔다. 1895년 의정부가 내각제로 개편되면서 없어졌다.
불천지위 [不遷之位] 또는 부조묘(不祧廟) 본문 큰 공훈이 있는 사람으로 위패를 옮기지 않고 영구히 사당(祠堂)에 두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 신주(神主)를 조매(祧埋)하지 않고 계속하여 봉사한다는 뜻에서 ‘부조위( 不祧位)’라고 부르며, 불천위를 두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 함. 불천위는 그 자손들이 있는 한 분묘와는 별도로 사당에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 이러한 제사를 불천위 제사(不遷位祭祀)라고 함. [유사어]: 불천위(不遷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