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논쟁은 끈질기기로 유명하다. 임금의 뜻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신하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절대권력 구조 아래에서 최만리의 옹고집은 대단했다. 평생을 집현전에서 보낸 성리주의 원칙주의자인 최만리는 ´한글 반대´ 상소뿐 아니라 임금이 틀렸다고 판단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정연한 논리로 잘못을 지적했다.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때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최만리와 격한 언쟁을 벌였다. 그럼에도 세종은 최만리를 중용했다. 세종은 최만리의 안티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원칙을 중시하는 엄격한 유학자의 신념을 근간으로 타당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세종의 폭넓은 인간경영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이 한창이다. 10년 만에 되찾게 되는 정권이고, 유례없는 높은 지지율을 획득한 당선이니만큼 의욕 또한 충천하다. 정부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나친 타박을 늘어놓다가 여론의 따끔한 지적을 받기도 할 만큼 잘 해보겠다는 기운이 넘쳐난다. 일부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의 으뜸공약으로 운위되는 ´한반도대운하´ 문제에 이르러 살펴보면 슬며시 걱정스럽다. ´대운하´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를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했으니 이제 실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신 권력 중심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 한편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해 당초 ´대운하´ 이야기가 나왔을 적부터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세력들은 일전불사를 벼르고 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엎어 봐도 안 되고 잦혀 봐도 안 된다는 반대논리를 잔뜩 챙기는 중이다. 양쪽 다 아직도 대선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정치논쟁의 후렴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보일 정도다. 이런 추세라면 운하건설에 대한 기본 지식은커녕, 평생 운하 겉 구경 한번 못해본 사람들이 우르르 나서서 옳으니 그르니 삿대질하며 싸움판을 벌이게 생겼다. 정말 뭔가를 알아서가 아니라, 또 진정 운하건설 찬반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략적 계산만으로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로 험구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귀책사유가 누구에 있든지 간에, 지난 2007대선은 정책을 치열하게 검증하고 평가한 ´정책선거´였다고 볼 수 없다. 이명박 당선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한반도대운하´ 공약 역시 제대로 짚어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대운하´에 대한 국민의 ´무한정 용인´ 쯤으로 인식하는 정치논리는 국익차원에서 결코 슬기롭지 못하다. 민주주의는 반대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반대의 목소리를 잘 경청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이제 ´한반도대운하´ 문제와 관련된 일체의 정략논쟁을 중단해야 할 때다. 계획을 가감 없이 드러내 놓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충분히 토론하고 점검해야 한다.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요구 또한 허튼 정치주장에 불과하다. 건설에 착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포함하여, 착수할 경우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며 대책은 또 무엇인지를 철저히 짚어내야 한다. ´운하´에 대한 깊은 전문식견이 없는 정치인들은 당분간 찬반의 입을 다물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지켜보는 것이 지혜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역사를 놓고, ´졸속추진´만은 막아야 할 최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반도대운하´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의 유연하고 폭넓은 자세다. ´원칙이 있는 반대´에서 교훈을 찾고, ´논리가 있는 지적´에서 시행착오를 막을 묘안을 도출해내는 ´실용주의´의 용의주도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래야 금수강산 잘못 파헤쳐 놓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한글창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최만리는 끝내 벼슬을 던진 채 낙향했고, 이듬해 목숨을 다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최만리가 한양을 떠난 이후에도 3년 동안이나 부제학 자리를 비워두고, 임금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그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안재휘/부국장
게재일 : 2008.01.07
동수 틱림
이글 잘 보았습니다. 영림 청년회장님 . 청사에 남을 절개와 원칙을 지키신 부제학공의 후손임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