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문 ----- 桂苑騰筆花王諷。彼哉何與斯文會。丙鹿乘運以武興。玉龍翻偈蔥嶺帶。古有湖學今九齋。大東儒術方伊始。用之鄕黨能變俗。用之邦國能資治。九月山前開講席。一時濟濟橫經士。十二徒中稱文憲。中華文物依俙是。一脈上接八條敎。餘瀾鼓發滄海水。已道丹山易已東。更聞聖眞乘桴至。至今陶成禮樂鄕。冠天履地誰非功。杏樹宮前有遺憾。明庭大議嗟非公。
------------------ 성호 이익 선생의 구재가를 말씀하신것이구료. 성호 선생의 기념관은 바로 제집에서 지척인 안산시 이동 공원안에 있으며, 본래부터 이익 선생은 우리 문헌공 선조님께서 문묘에 들어가지 못한것에 대하여 그의 저서에 많이 서술하신분중에 한분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문헌공 ,문화공 선조님의 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분이라는 것을 우연하게도 지난주 에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 재만 국장님께서 올려주신 구재가는 오늘 처음 대하는 싯귀이지만 그외 여러 자료는 들추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헌공선조님을 배향하는 서원이 황해도 연안 비봉서원(飛鳳書院)에 주자와 함께 모셔져있다는것도 알게 되었으며, 선조조에 평양의 문묘 동무에도 모셔져있었다는 기사를 볼수가 있습니다.
*동무: 조선 시대에, 문묘(文廟) 안의 동쪽에 있던 행각(行閣). 여러 유현(儒賢)의 위패를 서무와 나누어 모셨다.
당시 고려 의종 24년(1170) 무신 정중부(鄭仲夫)가 난을 일으켜 대궐 안밖에 있던 충의 문집등을 닥치는대로 불태우고 남은 것이 없었다.하였네요 그역시 해주사람이 아니던가요? 이것을 사람들은 일컬어 고려판 ""분서갱유"" 라고 하지요. 근데 정중부 같은 필부를 진시황에 비유했다는게 조금은 그렇네요 ㅎㅎㅎ